[리뷰] 농가행 후기 아주 느린 수확
마르쉐@은 처음으로 논을 갈지 않는 자연재배 농사, 그것도 토종 조동지 쌀농사를 짓겠다고 다짐한 이연진, 임인환 농부의 자연재배 벼농사를 올 한해 동안 함께 해 왔습니다. 서울과 홍성을 왕복하면서 진행된 모내기와 두 번의 풀베기에 이어 10월 17일, 드디어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벼 베기를 다녀왔어요.
‘이 아이들 수확할 때를 생각하면 벌써 눈물이 날 것 같아요.’
풀을 벨 때 참가자 몇 명이 들려준 말입니다.
정말이지, 흙 속에 손으로 뿌리내려준 15센티 남짓의 한두 올의 볏모가 풀들 사이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15개 정도로 분열되어 1미터 40센티나 되는 키가 되어 꽃을 피우고 묵직한 쌀알을 맺히는 한 생명의 성장 과정을 한 해 동안 지켜보았으니, 수확하러 가는 길은 설렘과 잔잔한 기쁨이 몸을 채웁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니 몸은 점점 힘이 들지만 원초적인 도구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논에 울리는 다양한 소리 속에서 느껴진 건 평화로움. 흙 속 미생물들과 곤충, 물, 햇빛, 바람, 계절… 자연이 만들어 준 산물을 손 수 수확하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만들어 가는 뿌듯함과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은 지친 몸에 힘을 불어줍니다.
벼농사로 홍성을 찾은 우리에게 올 한 해 동안 맛있는 음식과 조 동지 쌀밥을 지어주신 마르쉐@의 농부요리사 ‘연화의 슬로우푸드’ 김연화님께서, 이번 벼 베기에는 밥을 짓고 논으로 갖다 주셨습니다. 첫 회부터 빠짐없이 벼농사를 함께 해 준 마르쉐@ 손님인 김신범님은 손수 담근 현미 탁주를 맛 보여 주셨고요. 이연진농부님의 딸 나무는 우리를 위해 메뚜기를 왕창 잡아주고 고소한 메뚜기 튀김을 만들어 대접해 주었답니다. 따뜻한 마음들이 담긴 밥을 먹고 오후에는 다시 힘을 내어 수확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홀태나 발탈곡기로 탈곡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장판을 깔지 않는 곳에까지 쌀알이 튀어가며 흙 속에 사라져 갑니다. 먹을 수 있는 쌀알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까워서 열심히 줍는 저를 보고 ‘그것 줍다 보면 더 힘이 들어요, 쌀도 흙에 돌아가는 거니까 그대로 두세요’ 농부가 말립니다.
흙을 갈지 않는 자연재배 논농사에서는 중간중간에 벤 풀들과 수확한 볏짚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풀과 볏짚을 논 위에 잘 깔아주면 그들이 유일한 거름으로 그 속에서 미생물이 자라 다음 해 농사지을 흙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농부의 말을 듣고 인간이 모두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저의 욕심이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어요. 쌀알이 새나 곤충이나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도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기고 즐거워지더라고요. 동시에 버리기 아깝다고, 꼭 해야 한다고, 버리면 되는데 버리지 못하는 욕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에너지를 쓰고 사는 저의 생활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손을 움직이면서 그런 저런 생각을 따라가면서 수확의 시간이 깊어져만 갑니다.
20명이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체력은 한계로 다가가는데 탈곡작업은 40%만 끝낸 상태.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남을 힘을 꺼내며 작업을 하는데 옆 논에 벼 베기와 탈곡을 한꺼번에 하는 콤바인이 한 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 하는 사이에 논을 한 바퀴 돌더니 한 시간도 채 안 된 채 쌀 한 알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가고 탈곡까지 끝나버렸지요. 20명이 하루 종일 온 힘을 다해 일하는 옆을 달리는 콤바인. 갑자기 이 만화 같은 풍경의 주인공이 된 우리는 처음에 허무하다가 어느새 웃음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애정을 쏟는데, 우리 쌀이 더 맛있을거야’, ‘즐거웠으면 된 거지’ 그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벼 베기와 수확까지 한 해의 벼농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수확의 하루를 되돌아보니 자꾸만 그 만화 같은 풍경이 떠오르고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계가 한 시간 만에 완벽하게 끝내는 일을 20명이 몸으로 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효율과 완성도로 따지면 답이 안 나오고 결국 제가 하루의 노동을 통해 얻은 것들을 하나씩 짚어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다양한 손노동이 만들어 낸 기분 좋은 소리 속 평화로운 시간, 따뜻한 햇살 먹음은 벼의 좋은 향, 발탈곡기 다루는 기술이 늘어가는 즐거움, 짝지어 일한 친구하고의 놀랍도록 좋은 궁합의 발견,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욕심을 버리기로 결심한 몇 가지 결심, 땀이 날 때 느껴지는 너무나도 상쾌한 바람의 감촉, 그리고 언제 떠올려도 기분을 좋게 해 주는 황금빛 자연재배 논 풍경. 이 기회가 아니면 얻을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오르다 보면 콤바인 옆에서 느낀 순간의 허무함이 완전히 사라지더라고요.
‘기계를 안 쓰는 대신 사람을 얻었잖아요’
헤어지기 전에 이연진 농부님이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올해 홍성 자연재배 조동지 쌀은 50명이 넘는 사람들의 손을 통해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가는 640킬로의 쌀이 되었습니다.
처음 시도해 보는 갈지 않는 논 농사다 보니 500킬로 정도를 예상하셨다고 하는데 작년 수확량 700킬로에 가까운, 농부님의 말을 빌린다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수확량이랍니다.
120년 전부터 한반도 땅에서 이어져 온 토종 조동지 쌀, 마르쉐@가 함께 지은 자연재배 토종 조동지 햅쌀 맛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마르쉐@씨앗밥상 Seed to table 7번째 테마는 ‘자연재배 조동지 쌀’.
일시 : 2016년 12월 5일 월요일 오후 19시~21시
장소 : 카페 수카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27-9, 산울림소극장 1층)
참가비 : 45,000원 (자연재배 조동지쌀 요리 시식, 자연재배 조동지쌀 요리 레시피, 농부의 자연재배 조동지쌀 이야기 포함)
신청하기: https://goo.gl/forms/yqeKeQE8cRaO7tEI3
농부의 자연재배 조동지 쌀 이야기와 함께, 같이 농사지은 마르쉐@의 강지민 요리사(달키친), 김수향 기획자(카페 수카라), 변준희 요리사(카페 수카라), 이윤서 요리사(뿌리온더플레이트), 그리고 벼농사를 할 때마다 조 동지 쌀밥을 맛있게 지어주신 김연화 농부(연화의 슬로푸드)가 함께 조동지 쌀로 요리를 하고, 벼농사를 함께 한 김신범, 안정화 부부가 조동지 쌀로 술을 빚습니다.
뜻깊은 추수 잔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페 수카라 김수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