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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그릇 Vol.2 후기] <재료의 산책> 대단하지 않은 밥상의 힘

 

마르쉐@ 출점자들과 벗들이 많은 책을 세상에 내어 놓았습니다. 요리사와 농부 등 현장에서 자신의 손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이들이 풀어놓은 맛있는 이야기를 <시장에서 맛보는 책 한그릇>에 담아 갑니다. 지난 1월 시장에서는 마르쉐@ 초창기의 출점팀이자 씨앗밥상의 요리사로 함께 해 온 요나씨와 두번째 책 한그릇으로 <재료의 산책>을 맛 봤습니다. 요나씨의 대단하지 않지만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는 겨울 채소 반찬을 맛보며 그녀의 음식과 일에 대한 생각들, 팝업식당 <재료의 산책> 이야기를 나눠 보았어요.

 

만난사람 재료의 산책 고정연 (요나) 기획진행 마르쉐친구들 이보은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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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담은 요리

 

 사실 제 직업이 요리사가 맞나 싶어요. 전 원래는 전공이 미술이어서 그림을 그렸었는데, 어릴 때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요리에도 관심이 많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고… 그래서 ‘어떤 걸 선택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강박관념으로 있었는데 지금 계속 그렇게 고민을 하다보니까 어찌됐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더라구요. 

 

 제가 요리를 진짜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거는 대학교때 였어요. 10대 때 식이장애가 심했어요. 평생 숙제가 되었죠. 식이장애를 피하지 않고 오래 걸리겠지만 어떻게 먹어야 되고 어떤 걸 먹어야 되는지 스스로 부딪혀가면서 답을 찾아보고 싶었고 그러면서 요리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에 집중을 하려고 하는데, 요리가 제가 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표현하기에 지금은 제일 좋은 수단으로 느껴져요. 요리를 계속 할지는 모르죠. 10년 뒤쯤 다른 걸 하고 있을 수도 있죠. 저는 요리를 너무 사랑하지만 유명한 셰프가 되어야 겠다거나 멋진 요리를 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진짜를 먹다.

 

 수카라에서 일하다가 공간을 만들어 보고픈 욕심에 플랜트라는 비건 식당, 그 외에도 두 개의 식당을 운영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몸의 여유도 없어지고 정말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뭘먹어도 알러지가 생기고 기분도 안좋고 속도 망가지는 상황이 되더라구요. 어떤 순간을 계기로 다 그만뒀어요. ‘내가 뭐하고 있나?’그런 생각이 들어서 먹는 것을 바꿨어요. 잘 요리해서 먹어보고 재료를 중시하며 진짜 요리를 먹었어요. 그게 긴 시간도 아니고. 먹는 것에 집중한 1년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이번에 낸 책 ‘재료의 산책’은 어라운드라는 잡지에 제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달 한가지 재료를 정하고 재료의 이야기와 레시피를 소개해 왔던 것이 책으로 묶여진 것이고, <재료의 산책>이라는 팝업식당은 제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음식으로 이야기 하는 공간이에요. 팝업식당을 한게 벌써 1년이 넘어서 팝업식당이라는 이름을 쓰기가 이제는 조금 부끄러운데요. 지금도 한달에 서너번만 열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정규적인 식당을 할 생각은 없지만 제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어떤 식사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이야기는 계속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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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

 

 먹는다는 거에 대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 생각이 없어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배가 부르니까 기분이 좋다’ 그러는데 정작 먹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잖아요. 사실 그걸 생각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제가 잘먹는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많은 의미에서 ‘잘 먹는다’는 ‘잘 산다’는 의미인거죠. 

 

 음식을 먹는 것 만이 식사가 아니라 음식의 맛에 희열을 느끼고 이 식사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가는 시간도 식사라고 생각해요. 물론 요리를 하고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와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설거지를 하고 치우는 모든 시간이 다 식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삶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어요. 너무 쉽게 필요한 것을 얻으면서 그 시간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요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걸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쁜 것에 담기는 것들

 

 <재료의 산책>에서 오늘의 채소음식을 한접시에 담아내요. 사실 과하게 예쁘게 하는 편이죠. (웃음) 저렇게까지 해서 먹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물론 제가 좋아해서도 있지만 이렇게 나가면 누구나 감사히 먹어요. 이렇게 음식에 수고스럽다고 써놓듯 예쁘게 담고 메뉴판에는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상세하게 다 써 드리거든요. 

 

 그러면 손님들이 식사를 할 때 아무도 빨리 먹지 않고 ‘뭐가 들어가 있나’, ‘이게 무슨 맛이야’ 느끼고, 천천히 씹고, 밥맛을 음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그게 저는 되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거든요. 뭔가 음식이 앞에 있으면 ‘이걸 누가 길렀을까?’ ‘이걸 기르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죠. 제 식탁에서 그런 시간들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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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르쉐@씨앗밥상 vol.14 들풀

대단하지 않은 밥상의 힘

 

 저는 하루에 삼시세끼 먹자는 게 아니에요. 왜냐면 저는 여기에도 썼는데. 이게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잘 먹으려고 해요. 그래서 좀 덜먹어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식사를 챙겨 먹어야지 이런 생각에 휩싸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요리를 하는데 장애물일 수 있어요. 일단은 내가 내 밥을 해먹어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지, 요리사도 아닌데 늘 맛있을 수 없죠. 대신 맛있게 먹을 수 있음 될 것 같아요.

 

 

채소로 만드는 반찬

 

 <재료의 산책>에서는 메뉴를 미리 안정해요. 미리 정해두는 게 의미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게 제가 채소를 중심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제가 어떤 요리를 하고 싶다 생각해도 채소가 없을 때가 훨씬 많아요. 재료 수급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저는 자연스럽다 생각하기 때문에 억지스럽지 않게 메뉴를 구성하려고 해요. 저는 마르쉐@나 채소가게에서 사는 편인데 그렇게 구해지는 재료 안에서 대단하지 않은 요리를 하거든요. 제철에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찌고 볶고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면서 맛이 튀지 않게 하고 영양소도 생각해 보면서 한끼를 준비하죠. 재료가 사실 뭐가 있든 대단하지 않은 요리를 하려 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 한 것 같아요.

 

 

겨울을 담은 채소반찬들

 

 오늘 채소반찬을 준비하느라 엊그저께 찬우물농장에 가서 시금치를 받아왔어요. 겨울 시금치를 무하고 깨 갈은 것, 표고버섯과 함께 무쳤어요. 농부님께서 시금치 뿌리를 꼭 쓰라고 당부하시더라구요. 맛봤는데 너무 달아요. 그래서 뿌리는 그대로 건강하게 잠깐 데치고 무는 볕드는 데서 조금 말려서 썼어요. 그리고 표고버섯은 하루 이틀정도 소금에 절여서 볶으면 버섯 맛이 더 진해지는데 여기에 손질한 시금치와 무를 함께 더해서 통깨와 간장, 된장 약간으로 양념하면 됩니다. 

 

 다른 하나 연근,목이버섯 귤소금무침이에요. 목이버섯은 마르쉐@ 새암농장 생목이버섯을 썼고 귤소금은 유기농 귤을 껍질째 썼거든요. 꼭지만 따서 갈아서 소금을 귤중량의 10%쯤을 넣어 버무려요. 그러면 드레싱으로 많이 쓸 수 있는 ‘귤소금’이 되죠. 저는 연근이랑 목이버섯 데친거를 귤소금으로 버무려 왔구요. 그리고 또 단감조림의 흑토미 샐러드가 있는데, 오늘은 제가 단감을 평소와 다르게 쓰려고 준비해 왔거든요. 식초, 설탕, 향신료 중에 시나몬이랑 정향, 팔각, 카다몬 넣은 물에 단감을 졸였어요. 흑미밥을 지어서 올리브 오일로 버무리고 단감조림과 섞었어요. 이건 샐러드처럼 먹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쓸 수 있는데 오늘은 반찬으로 준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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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채소의 계절을 느끼는 것

 

 저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지금 운영하는 팝업식당에서는 채소 요리만을 내드리고 있어요. 그 이유는 너무 많은데요. 일단 제가 하는 <재료의 산책>이라는 것은 서울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잖아요. 서울에 있는 사람들한테 먹는 거를 제안하고 도움을 주자는 걸로 시작을 했는데요. 서울에서 외식을 하려고 보면 채소를 먹을 기회가 너무 없어요. 그런데서 곤란을 겪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제가 워낙에 예전에 먹는 걸로 병을 앓았던 사람이다 보니 먹는 거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든 아니든, 그런게 맞다 그르다를 떠나서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위해 싸우는 이들의 삶도 의미있다고 생각하구요.

 

<재료의 산책>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연락 주시는 손님들 중에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분들이 참 많아요.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는 음식 때문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구나라고 느끼죠. 특히 채소로 요리를 하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게 즐거워요. 식사를 하는게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고, 밥을 먹으면서 ‘아! 내가 어떤 계절에 살고 있구나!’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고기요리는 사계절 거의 같은 맛이라 계절을 느끼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채소요리는 계절을 기다리게 해요. 먹고싶어도 먹을 수 없는 애타는 마음으로 계절을 기다려야 하죠. 채소요리는 이런 특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있습니다.

 

 

자연, 재료들과 함께 하는 삶

 

미래의 제 모습은 아직 모르겠어요. 사실 따로 정하지 않는 게 저는 제일 편한 것 같아요. 다만 가까운 미래에 조금 더 자연이 좋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재료의 산책>의 밥상을 차리면서 한국에서 나는 걸 먹는 게 나한테 좋다는 걸 느꼈고. 한국의 식재료, 내가 태어난 곳의 것들을 제대로 맛보는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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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요리를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부터가 식사의 시작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거진에 연재한 동명의 기사 ‘재료의 산책’을 책으로 묶은 단행본이다. 아스파라거스, 바질, 토마토 등 계절마다 어울리는 재료를 골라,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재료 손질, 계량, 조리방법 등을 수록했다. 거기에 일기처럼 써 내려간 요나의 담백한 에세이를 함께 수록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재료의 산책>은 ‘봄의 일기, 여름 일기, 가을 일기, 겨울 일기’ 총 4권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의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한 손에 잡히는 크기로 디자인했다.

 

저자 요나

일본 도쿄의 타마미술대학多摩美術大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2012년 요리 에세이 《요나의 키친 YONA’S KITCHEN》을 발간했고, 2013년 봄부터 2016년 가을까지 매거진 AROUND에 요리 코너 ‘재료의 산책’을 연재했다. 이태원에서 ‘플랜트’, ‘요나요나버거’, ‘유니버스 샌드위치’를 운영했으며, 현재는 서울 홍은동 작업실에서 ‘재료의 산책’이라는 이름의 채소 요리 식당을 팝업으로 운영 중이다. (출처 – 네이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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